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5.18 민주화운동/학살 (문단 편집) == 전조 == '''18일 새벽 2시''', 제7공수특전여단 33대대가 [[전남대학교]]를 점령했다. 도서관에 공부하려 모인 학생들과 [[5.17 내란]]과 비상계엄 전국 확대 조치에 당황해서 모인 대학생들은 공수부대에게 막혀 학내에 구속됐다. 진주한 33대대는 교내를 수색해 학생들을 무차별 공격하고 연행해갔다. 이때 학생들 중에는 농성하는 학생들도 있었지만, 멀쩡히 도서관에서 공부하다가 날벼락을 맞은 사람들도 있었다.[* "오전 10시에 전남대 교문 앞에서 학생들이 먼저 공수부대에게 돌을 던졌다"고 우기는 사람들이 있다. 예로 [[5.18 민주화운동]] 문서 r46 버전만 해도 "그들은 일정한 거리를 두고 '계엄군 물러가라'는 구호를 외치며 교문 출입을 저지하는 공수부대원에게 돌을 던지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서 공수부대 측에 부상자가 발생하자, 이에 분개한 공수부대원에 의해 학생들은 구타당했다"라고 학생들이 먼저 공격한 걸로 왜곡 서술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아래 병원 기록과 의사의 증언을 보면 알겠지만 공수부대원들은 이미 전남대에서 돌 던지기 전부터 시민들을 구타하고 있었다.] >손치근(전남대 행정학과 4년, 남, 27세): 5. 18. 08:20 응급 환자 입원, '''어제저녁(5. 17. 12:00 MN)''' 짜장면을 먹고 도서관에서 __잠을 자는데 갑자기 공수부대들이 들이닥쳐 두들겨 패서 복통 및 구토 발생.__ 복부 좌상(타박상) 2주. >---- > [[https://www.518archives.go.kr/books/ebook/23/index.html#page=725|전남대병원 「응급 환자 기록지(#227050)」]], 광주광역시 5.18사료편찬위원회 『5.18광주민주화운동 자료총서』 23권, 2000., 725쪽[* 김현종(당시 전남대병원 외과 레지던트) 증언: "최초로 본 병원 응급실을 찾아온 환자는 손○○(27세, 남)로 5월 17일 저녁 도서관에서 잠을 자는데 갑자기 공수부대원들이 들이닥쳐 곤봉으로 복부를 가격해 복통과 구토를 호소하며 5월 18일 오전 8시 20분경에 응급실로 내원하였다. 기록에는 "복부 좌상(타박상), 2주"라고 적혀있었다." 출처: 노성만 『5.18, 10일간의 야전병원』, 전남대병원 2017., 53쪽] >"'''새벽 2시쯤''' 되었을 것이다. 발자국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더니 문을 쾅쾅 차는 소리가 들렸다. 공수부대가 진입한 것이다. 그들은 내게 중앙도서관 열람실의 비상 키를 요구하더니 도서관 열람실을 샅샅이 수색한 후 공과대학 본관으로 갔다. __이어 학생들이 끌려나왔고 마구잡이로 두들겨 맞았다.__" >---- >고광윤 씨(당시 전남대 직원) 증언[* 『정사(正史) 5.18』, 광주매일신문 정사 5.18 특별취재반 엮음, 1995, 135~136쪽.] >"처음 부상자가 병원에서 온 것은 18일 날 아침으로 생각되는데 전남대생 대여섯 명이 '''6시 반에서 7시 사이'''에 공부하러 가다가 군인들에게 맞아서 머리 등지가 다쳐서 왔다. 그래서 머리를 꿰매고 치료해주었는데 __이 학생들은 데모를 한 것도 아니고 실제 공부하러 갔는데도 무차별로 두들겨 맞은 것 같다.__" >---- >노준채(당시 노준채외과의원장) 증언[* 광주광역시의사회 『5.18 의료 활동』 1권, 1996., 199쪽] 비슷한 시각, 7공수여단 35대대는 [[조선대학교]]를 점령했다. 이곳도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80년 5월 17일 조선대학교 본관에 위치한 방송국에서는 조선대 방송국 개국기념식 및 학원자율화를 위한 선후배 간담회가 있었다. 1부는 방송국 개국행사, 2분은 선후배 간담회로 그후까지 철야농성을 하기로 되어 있었다. 밤 11시쯤 31사단 소속 통신장교 1명과 사병 2명이 학교 통신물을 점검한다는 이유로 본관의 방송국으로 올라왔다. 형식적인 점검 후 그들이 나가자 나는 화장실에 갔다. __잠시 후 방송실에서 험한 욕설이 흘러나오고 뭔가 부서지는 소리와 비명소리가 요란했다. 교내에 계엄군이 진입한 것이다. 그때가 '''밤 12시쯤'''이었다.__" >---- >진호림 씨(당시 조선대 학생) 증언[* 『정사(正史) 5.18』, 광주매일신문 정사 5.18 특별취재반 엮음, 1995, 136쪽.]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